23.3월의 화두는 단연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으로 촉발된 은행 분야에 대한 불안 확산이었다. 이러한 불안 확산은 2020년 이후 막대한 투자손실을 기록한 Credit Swiss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구심 증대로 이어졌으며 결국 CS는 스위스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하에 같은 스위스 국적 은행인 UBS에게 인수합병되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SVB의 파산 배경에 대해 알아보고 그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본다. 이 글을 작성하는 데 있어 Yahoo Finance의 다음 기사를 참고하였다.

1. Silicon Valley Bank(SVB) 개요

SVB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은행으로 실리콘밸리가 글로벌 테크기업들의 요람인 만큼 SVB의 주요 고객 또한 테크기업과 스타트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총자산 기준으로 SVB는 미국에서 16번째로 큰 은행이었는데, 코로나19 이후 예금(부채)와 자산이 크게 증가하였다. 이는 미 연준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들의 공격적인 금리인하 및 양적완화로 경제 전반에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도 활발해지고 테크기업들의 이익 또한 크게 증가함에 따라 SVB의 주 고객인 이들 기업의 예금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22년말 기준 SVB의 자산은 2,147억달러를 기록하였다.

은행의 주된 경영모델은 예금으로 조달한 자금을 대출, 금융상품 투자 등으로 운용하여 이자의 차이만큼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막대한 예금이 예치되면서 SVB는 예금을 그냥 쌓아둘 수 없으니 이 돈을 주로 미국채 장기물과, MBS(주택저당증권)에 투자했다. 그 결과 22년말 SVB 자산의 55%에 해당하는 1,200억달러가 미국채, MBS 등으로 구성된 상태였다.

2. 미국채 장기물과 MBS 투자비중이 높았던 것이 왜 문제인가?

언뜻 보기에 미국채 장기물과 MBS로 SVB의 대부분의 자산이 구성된 점은 크게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 미국채권은 금(GOLD) 못지 않은 글로벌 안전자산이고 MBS 또한 지난 2008년 금융위기처럼 주택시장의 위기가 부실위험이 크게 증가하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1)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따른 중앙은행 기준금리 인상과 채권가치의 하락

문제는 22년 상반기부터 시작된 기준금리 인상에서 시작되었다. 코로나19 이후의 엄청난 유동성 증가, 우-러 전쟁, 미-중 갈등의 지속 등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충격 등으로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빠르게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연준의 빅스텝(50bp 인상)이니 자이언트스텝(75bp 인상)이니 등의 표현이 연일 경제신문 1면을 장식했다.

물가상승으로 인한 중앙은행 기준금리의 인상은 시장금리의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자율이 상승하면 채권으로부터 얻는 수익인 이자와 원금에 대한 할인율이 높아지니 자연스럽게 채권의 가치는 하락한다. 이는 SVB의 자산 사이드에 잡혀있는 미국채와 MBS의 가치가 하락을 의미한다. 관련 기사에 따르면 SVB의 보유채권 가중평균 듀레이션이 6년으로 나오는데 정확한 계산은 아니지만 이는 대략적으로 금리 1% 상승에 따라 채권가치가 6%가 하락함을 의미한다.

(2) 고객들의 예금 인출 요구와 유동성 문제

SVB가 보유한 채권 가치의 하락은 사실 경제가 무난하게 작동하는 상황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채권가치의 하락은 시장이자율로 평가한 장부가치의 훼손인 것이지 만기까지 채권을 보유할 경우 미국정부로부터 이자와 함께 원금을 상환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준금리의 가파른 인상과 경기침체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SVB의 주고객인 스타트업 및 테크기업들도 여유자금의 부족을 겪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은행 예금인출 요구가 커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고객들의 예금인출 요구에 응하기 위해서 현금성 자산이 부족했던 SVB는 자신들이 보유한 채권을 매도할 수 밖에 없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자율이 상승한(채권의 가치가 떨어진) 상황에서 보유한 채권을 그대로 들고 있는 것은 확정된 손실이 아니다. 그러나 유동성 확보를 위해 채권을 매입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매도하는 경우 이는 실현손실이된다. 추가적으로 공시자료를 통해 SVB가 만기가 긴 미국채, MBS 등에 집중 투자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고객들의 예금인출 요구는 더욱 거세졌다. 즉 뱅크런이 발생한 것이다. 3.9일 하루간 420억달러의 예금이 빠져나갔다. SVB의 총자본인 163억달러의 2배가 넘는 금액이 인출된 것이다. 결과는 SVB의 파산이었고 연준은 금융시장 불안의 확산을 막기 위해 급하게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연준의 조치에 대해서는 다른 포스팅에서 기회가 되면 다루기로한다.)

3. 너무나도 허술했던 리스크 관리

사실 SVB가 보유한 미국채와 MBS 등은 일반적인 은행들이 자산 사이드에 갖고 있는 대표적인 자산군일 것이다. 신뢰와 안정성이 중요한 은행이 위험한 주식, 원자재 등에 함부로 투자를 많이 할 수 없지 않은가? 문제는 금리인상 risk에 대해 지나치게 무지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SVB의 risk 관리가 허술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금융기관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채권의 금리 risk를 헤지하기 위해 이자율 스왑 등 파생상품을 활용한다. 그러나 22년말 금리위험을 헤지하기 위한 SVB의 금리 파생상품 명목가치는 5억5천만달러에 불과했다.

은행업의 비지니스가 예금과 같이 만기가 짧은 부채를 조달하여 만기가 긴 대출, 채권 등에 투자하는 듀레이션 미스매치가 큰 사업임을 감안할 때 이러한 리스크 관리는 미국 16위권 은행이라 하기에 민망한 수준이었다.

근데 이정도 규모 은행이면 BIS규제, 유동성 규제 적용대상 아닌가??

우리나라 은행들의 경우 BIS 자본규제, LCR 규제, 예대율 규제 등 비교적 촘촘한 규제를 받고 있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크고 작은 국제금융시장 불안에도 큰 불안 없이 잘 운영되었다고 보여진다. 그러면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앙지였던 미국의 16위권 은행인 SVB에 대해서도 비슷한 수준의 규제가 적용되었던게 아닐까?

그렇지 않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금융기관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제정된 Dodd-Frank법이 2018년 개정되면서 총자산이 2,500억달러 미만인 은행은 LCR(유동성커버리지비율)이나 NSFR(순안정자금조달비율) 같은 유동성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처럼 SVB는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하며 운영되어 왔던 것이다.

4. 공부한 김에 유가증권의 회계처리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SVB가 보유한 미국채, MBS나 주식 등 금융상품은 어떻게 회계처리될까??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금융상품의 회계처리방식에 따라 이자율 변동으로 인한 보유 채권의 평가손실이 재무제표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지고, 이는 은행의 영업행태에도 큰 영향을 주어 이번 SVB 사태의 배경을 제공하기도 하였다는 점에서 여러 언론들에서 중요하게 내용을 다루었다.

기업이 투자한 금융상품은 크게 (1)매매목적증권(Held for Trading, HFT), (2)만기보유증권(Held to Maturity, HTM), (3)매도가능증권(Available for Sale, AFS)로 분류된다.

  • (1) HFT: 통상 3개월 이내에 매도가능성이 있는 상품이 해당되며 매매를 통해 투자수익을 얻고자 하는 경우. 회계연도 기말마다 시가평가를 하며 시가평가에 따른 이익 및 손해를 손익계산서상 순이익, 순손실에 반영.

  • (2) HTM: 기업이 만기까지 보유하겠다고 분류한 상품. 이자수익은 매 회계연도마다 손익계산서상 순이익에 포함시키지만 상품자체의 가치를 기말마다 시가평가하지 않음.

  • (3) AFS: HFT와 HTM에 해당하지 않는 상품으로 단기간 내는 아니지만 매매 가능성이 어느정도 있는 상품이 해당. 기말마다 시가평가를 하게되는데 시가평가액과 취득원가와의 차이는 손익계산서상 순이익에 반영하지 않고 재무상태표의 기타포괄손익누계액(Other Comprehensive Income, 자본항목)에 반영.

SVB의 사례에 적용시켜 보면 자산항목에 미국채와 MBS의 비중이 높은 상태에서 시장금리의 상승은 HTM으로 분류된 채권의 경우 대차대조표에 영향이 없고 AFS, HFT로 분류된 채권은 각각 자본항목의 OCI, 손익계산서의 순손실로 반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AFS의 평가손실이 자본항목의 OCI에 반영이 되긴 했으나 은행의 복원력중 가장 중요한 지표인 규제자본비율을 계산하는 데 있어서는 해당 평가손실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2019년 이후 총자산 규모 7,000억달러 미만의 은행에 대해 규제자본비율 계산시 AFS 미실현손익 반영 안되도록 해당 규제를 완화) 구체적으로는 BIS 규제자본비율의 계산에 있어 들어가는 CET1(common equity Tier 1 capital)에 AFS의 미실현손익(평가손익)에 따른 기타포괄손익누계액 증감이 반영이 안 되어온 것이다.

물론 JP모건이나 BOA 같은 초대형 은행들은 해당규제의 적용 예외대상이 아니었지만, 이들 은행도 금리상승으로 AFS로 분류된 채권의 평가손실이 커지는 상황에서 이들 채권을 HTM으로 재분류함으로써 자본비율이 악화되는 걸 피할 수 있는 일종의 꼼수(?)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월가에서는 만약 AFS의 평가손익이 SVB의 자본비율에 반영되었더라면 자본비율의 훼손을 우려한 SVB가 금리 상승에 대한 헤지를 해두거나, 평가손실이 커지기 전에 채권 등에 대한 익스포져를 줄이는 등의 조치를 취해 올해 3월과 같은 급작스런 뱅크런은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출처: Yahoo Finance)

이자율 상승에 따른 채권가치 하락으로 대차대조표가 점차 악화되는 상황(자본의 감소)은 투자자 및 예금자들의 불안을 높이게 되었고 연준의 긴축기조와 맞물려 예금인출 요구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유동성을 마련하기 위해 SVB는 AFS로 분류된 채권을 실현손실을 감수하면서 매도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예금자들의 불안을 증폭시켜 더 큰 예금 인출 요구를 불러왔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 변동금리 대출 비율이 높고 투자채권의 듀레이션이 짧아 금리 상승시 금융기관의 손실이 크게 확대될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다만 금리상승에 따른 예금자, 보험 가입자들의 인출 요구 → 금융기관들의 유동성 수요 증가 → 일부 금융기관에 대한 유동성 우려 등의 흐름으로 미국과 비슷한 시나리오가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5. SVB 사태 이후의 규제 강화 흐름

23.4월 WSJ의 기사에 따르면 SVB 사태 이후 미 연준은 올해 6월즈음 AFS 분류 금융자산의 평가 손익의 자본비율 미반영 예외조항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규제가 시행되면 자산총액 2,500억달러 미만의 은행들도 AFS의 미실현 평가손익을 자본비율에 반영함으로써 은행의 투자 성과가 복원력지표에 잘 반영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규제 강화에는 부정적인 효과도 따를 수 있다. 첫번째로는 금리변동으로 인한 채권의 가치 변화가 즉각적으로 자본비율에 반영됨으로써 자본비율이 변동성이 커지게 된다.(이러한 점을 근거로 중소형은행들은 지금까지 규제를 피해왔다….) 또한 은행들의 보수적인 자본비율 관리로 인해 은행의 국채 및 MBS 등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게 되면서 연준의 긴축 통화정책 기조시에 시장금리가 더욱 크게 상승하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역시 대부분의 정책에는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공존한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게 되는 부분이다. 그만큼 정책을 펼치는 입장에서는 하나의 정책이 여러 상호작용을 통해 다른 부분에 미칠 영향까지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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